바바라 위어

생이별의 한을 화폭에 담다

Rebecca Lambert
22 November 2016

1910년과 1970년 사이에 호주 정부에게 가족을 빼앗긴 원주민 아이들을 ‘도둑 당한 세대’라고 부른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인 바바라 위어. 그녀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얻은 영감으로 탄생한 역동적인 작품들을 통해 이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한다.

바바라 위어는 수많은 점과 정교한 붓 질로 과거의 사연을 생동감 넘치는 추상화에 담고 있다. 그녀는 강렬한 색체의 리드미컬한 소용돌이 무늬와 감미로 운 점으로 원주민들의 고향인 유토피아 (Utopia)에서 영감을 얻은 숨겨진 이야기들 을 표현한다. 이 고대의 전설은 그녀가 가족 들을 빼앗기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이다. 위어는 지난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전해들은 이야기를 우리 몸에 그림으로 그리곤 했다. 어렸을 때, 행사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 른들이 몸에 그림을 그려줬다. 할아버지, 할 머니, 삼촌, 이모들은 4만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며 대대손손 전해져 내려온 모래사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이야기들을 우 리 아이들에게 그림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빼앗긴 유년 시절

유토피아에서 이름을 떨친 예술가인 미니 푸웰리(Minnie Pwerle)와 아일랜드계 목장 주인 잭 위어(Jack Weir) 사이에서 태어난 바바라 위어는 원주민과의 혼혈로 태어난 자녀들을 가족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보육 기관이나 양부모에게 맡기는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 됐다. 10살 때부터 정부가 운영하 는 보육원에서 자란 위어는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뒤에나 가족과 재회할 수 있었고, 이후 50년을 함께 살아 왔다.

바바라 위어 (Image © Artlandish Aboriginal Art Gallery / Barbara Weir)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바람에 흔들리는 풀 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풀씨 (Grass Seed)'라는 작품에는 그녀가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이 표현되어 있다. "정부에서 이따금 배급을 해줬는데 얼마 못 가서 식량 이 바닥났다. 그러면 늘 그랬던 대로 부시 터커, 그러니까 '덤불에서 구한 씨앗'으로 배 를 채우곤 했죠." '모국(My Mother's Contry)'이라는 작품에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자연 경관이 담겨 있다. 켜켜이 이어진 녹색, 청색, 황토색 점들은 그 녀의 가족이 몸에 그렸던 성지(聖地), 강, 전 통 문양을 의미하는데, "모두 모국에 실존하 는 특별한 장소"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것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의 이야기라고 강조하며 "아버 지가 호주 원주민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 이다. 외할아버지에게 따로 허락을 받아야 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는 곤란하다"고 전했다.

과거와의 화해

고대 전통에 대한 통찰력을 담은 작품에서 는 그녀의 결단력과 투혼이 엿보인다. "처음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나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백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나도 끔찍했던 나로서는 충격이 더 컸다. 더 군다나 언어가 달라서 어머니와 대화조차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다시 교감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녀의 이모이자 유명한 예술가인 에밀리 킁와레예(Emily Kngwarreye)가 그녀를 따뜻 하게 맞아준 덕분에 그녀는 이모집에 머무 를 수 있었다.

유토피아로 돌아온 그녀는 가족의 신뢰를 회복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언어를 다시 익 히는 일이었다. 남편과 이혼한 후 귀향을 했 던 터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남편 이 날 떠나지 않았다면 절대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녀가 유토피아로 돌아온 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킁와레예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위어는 자 신만의 예술 철학을 추구했다. 위어는 "이모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만 전하 고 싶은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법이니 이모 의 작품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예술가로서의 여정

고향으로 돌아온 직후인 1970년대에 호주 원 주민 토지권 회복 운동에 왕성하게 참여한 위어는 1985년 여성 최초의 IUC(Indigenous Urapunta Council) 의장이 됐다. 그녀가 그 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45세가 되던 해인 1989년이다.
위어는 새로운 표현 수단, 스타일, 기법에 과 감하게 도전했다. 한 예로, 위어는 인도네시 아에서 밀랍 염색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자 연과 가족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위어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모들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도 들 을 수 있었다. 또한 나에 대한 신뢰가 깊어 질수록 이모들은 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 다."고 말했다.
그녀는 호주 관광청이 제작한 '바바라 위어 가 바라본 호주'라는 광고에 출연하는가 하 면 2009년 Australian Art Collector Magazine이 선정한 작품을 소장할 만한 가 치가 있는 예술가 50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위어는 의뢰 받은 작품을 완성하느라 13차례나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만의 사연 을 공유하고 강연 활동도 병행해 왔다. "내 작품을 좋아해 주고 내 이야기에 공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위어의 최근 작품들의 주제는 모국 예찬이 다. "유토피아를 가로지르는 강물이 흐른다. 유토피아는 행사가 있을 때 우리가 몸에 담 았던 곳이자 어린 소녀들에게 설화를 알려 주는 곳이다."
위어는 아버지의 조국인 아일랜드로 가서 그림을 그릴 계획이다. "사촌들이 내게 가족 농장을 그린 그림을 보내줬다. 그곳에 꼭 가 보고 싶다."

위어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대중이 호주 원 주민의 문화를 접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 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호주 원주민이 모두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사람들이 여전히 거부감을 보이 기 때문이다.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 야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아티스트인 바바라 위어는 1910년과 1970년 사이에 호주 정부에게 가족을 빼앗긴 원주민 아이들인 ‘도둑 당한 세대’ 중 한 명이다. 그림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받은 영감으로 그녀는 작품을 통해 이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진 ©바바라 위어 & 아트랜디시 원주민 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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