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문제

세계화된 세상에서 다양성을 보호하려면 균형이 필요하다

Jacqui Griffiths
26 October 2013

전 세계 공동체들은 균일화라는 위협에 맞서 지역 고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표준화를 주동하는 세력이기도 한 세계화와 디지털 통신은 진화하는 다문화 경험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야기, 지명, 예술, TV, 문학, 음악은 공동체의 역사에 기여하고 해당 공동체의 현재 및 미래의 문화적 주체성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사용하던 게일어의 소멸에서부터 파리의 샹젤리제를 점령한 글로벌 체인형 소매점(이를 두고 저널리스트인 스티브 에를랭어(Steve Erlanger)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기사에서 "전혀 프랑스답지 않다"고 표현한 바 있다.)에 이르는 지역 문화에의 위협에 대해 지역 공동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신속한 이동과 디지털 기술로 가능해진 세계화가 가져온 균일화 현상으로부터 지역 문화를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점점 더 세계화 되어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문화의 본질, 즉 문화의 진화성을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유네스코 무형유산과의 책임자인 세실 두벨(Cecile Duvelle)은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여지는 항상 존재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문화를 현재 모습 그대로, 즉 어떠한 변화나 진화도 없는 상태로 보존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문화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세월이 흐르면서 극적으로 변화해 갑니다. 따라서 세계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계화는 모든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계화를 통해 모든 문화가 진화해나가고 새로운 표현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문화적 표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능하다. 특히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디지털 미디어, 다른 문화와의 상호 교류, 그리고 영화, TV 프로그램, 음악과 같은 경우에는 세계 곳곳에 배급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화의 진화에 대한 저항 역시 오랫동안 이어져 때로는 세대에 걸친 저항이 이뤄지기도 한다.
세실 두벨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부 문화적 표현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새로운 문화가 한층 균질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인식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와 문화적 다양성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적 표현이 더욱 풍부해지기도 합니다."

언어

언어와 방언은 문화 유산을 보전하려는 많은 노력들 가운데 특히 핵심이 되는 요소들이다.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에딘버러 대학교 스코틀랜드 민족학 강사 윌리엄 램 박사(Dr. William Lamb)는 "방언을 보존해야 한다는 말은 공동체 자체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지역 고유의 언어와 방언은 우리가 축적해온 언어적 및 문화적 역사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두 가지 언어를 모두 표기한 간판, 지역 언어로 방송하는 TV 채널, 지역 언어로 이뤄지는 교육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노력은 문화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지위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키는 데 기여한다. 실제로 이런 노력들을 통해 스코틀랜드 고유 언어인 게일어를 일부 보존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통신 수단이 진화해나가는 세계에서 기존의 언어와 방언이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윌리엄 램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언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관련 교육이 많이 이뤄진다면 사람들은 이들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것이고,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져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 말과 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갑니다. 그리고 언어 사용 습관을 통제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Local languages and dialects are a crucial part of our collective linguistic and cultural history.”

Dr. William Lamb
Lecturer in Scottish Ethnology at the University of Edinburgh in Scotland

윌리엄 램 박사는 다양한 게일어 방언을 구사하는 교사의 말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발음이 뒤섞인 새로운 방언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의 방언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완전히 소멸되는 것보다는 새로운 언어로 진화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윌리엄 램 박사는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언어의 균질화에도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언어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서로 그 언어를 사용하고 또 자신들의 자식에게도 사용한다면, 바로 그것이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어떤 개입에 대해 평가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고, 게일어나 기타 소수 언어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했던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국어의 순수성을 치열하게 방어하려고 애쓰는 나라도 있다. 프랑스가 좋은 사례이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소셜 미디어에서 통용되는 "해시태그(hashtag)"라는 표현 사용을 거부하고 "모-디제(mot-dièse)"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소멸 위기 언어재단(Foundation for Endangered Languages) 이사장인 언어학자 니콜라스 오스틀러(Nicholas Ostler)는 영어를 지구촌 공통어, 즉 모국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본 언어로 채택하는 일을 지연시키는 데 인터넷이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온라인 번역기가 한층 빠른 속도로 더욱 확실하고 정확하게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료라는 점이다. 니콜라스 오스틀러 이사장은 그의 저서『최후의 공통어 : 바벨의 귀환 이전의 영어』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인터넷에서 주로 성장한 것은 언어적 다양성이지 내용 질이 아니다." 완벽한 동시 번역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인터넷이 언어의 균질화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다양성을 실현한다는 니콜라스 오스틀러 이사장의 지적은 언어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지구촌

지역의 문화를 보전하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지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되지 않아야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베네수엘라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정부들은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의 일정 비율을 쿼터로 정해 자국의 언어나 지역의 문화를 반영한 방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라디오 방송과 케이블 방송 및 위성 방송을 포함하는 TV 방송은 전체 프로그램의 일정 비율 이상을 캐나다인이 집필, 제작 또는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반드시 편성하도록 규제한다. 캐나다 라디오-TV 및 통신위원회에 따르면 프랑스어와 영어 모두를 사용하는 라디오방송국 역시 매주 방송되는 대중 음악 방송의 35% 이상은 반드시 이러한 캐나다 콘텐츠로 채워야 한다.
문화 다양성 수호를 위한 캐나다 연대의 총괄이사 샤를 발레랑(Charles Vallerand)은 이러한 규제는 세계화를 부정하려는 의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된 세상에서 지역 문화가 설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한다. "해외 콘텐츠를 거부하거나 국경을 닫아 걸기 위해 하는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문화적 자산을 보호하는 문제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바로 이것이 캐나다와 프랑스가 공영 방송에 자국 프로그램 방영 비율을 정해주는 쿼터제도를 도입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방송에는 수많은 해외 콘텐츠가 난무합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콘텐츠가 설 공간을 찾아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005년 유네스코는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지역의 문화적 표현을 보호하고 전 세계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지원한다. 이 협약을 지원하는 취지로 2012년 제출된 보고서를 살펴보면, 세계적 차원의 관점이 여러 문화 정책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지역 문화를 보호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일은 세계화에 적응해나가는 방법이지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아닙니다.”

Cecile Duvelle
Chief of the Intangible Heritage Section at the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UNESCO)

일례로 브라질의 정책은 자국 영화 제작자들이 국제적 산업 기준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브라질 영화제작자들은 국제적 차원에서 자금을 지원받고 국제 무대에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에는 도서 부문에서의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촉진하는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도서의 형태는 디지털이든 종이책이든 무관하게 지원한다. 이와 같은 프랑스의 문화 정책은 유럽 전역과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서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세실 두벨은 "뿌리 깊은 지역의 전통을 지켜내고 지구촌의 일부로서 살아 숨쉬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전통 음악, 전통 미술, 전통 풍속을 지켜내고자 하는 정서는 선진국에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를 나이 든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지닌 젊은이들은 자국의 문화를 보전하려 합니다. 그들은 자국의 문화가 인식되기를 바라며, 세계 시민으로서 자국 문화를 전파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수많은 다양성을 갖고 있는 나라인 미국은 거대한 다양성 전시장과도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내에 존재하는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수많은 언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문화적 주체성에 대한 생각은 아주 강합니다."

디지털의 미래

눈 여겨 볼 부분은, 유네스코 협약은 문화적 다양성의 보호에 초점을 맞출 뿐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문화적 다양성을 촉진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는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공동체의 노력을 통해, 다양성의 개념은 차이에 대한 인정과 상호 교환을 통해 구축된다. 이러한 요소 모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육성되고 있는데, 디지털 기술은 문화적 결과물을 교환하는 환경 또한 변화시키고 있다.

오늘날 무역 협상의 초점은 전자상거래로 이동했고, 특히 방송 서비스의 전자 방식에 의한 전송이 그러하다. 샤를 발레랑은 이렇게 말했다. "서로 다른 당사자들이 문화적 예외 사항, 쿼터, 보조금 지급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합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전자상거래에 대한 협상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양측 모두 모든 것이 자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무역에 대해 인식하게 됨으로써 무역은 더욱 자유화될 것입니다. 서비스가 아니라 하나의 제품으로 인식되는 방송의 미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세계화가 심화되고 디지털화가 진행됨에 따른 결과가 문화 교환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온전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양성을 수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향은 분명 존재하지만 고립주의적 시각에서 문화적 주체성에 접근할 여지는 거의 없다.
세실 두벨은 이렇게 말했다.
"세계화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통신 채널을 사용하고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년 전 내지 30년 전에는 가까이 할 수 없었던 문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조차 문화적 다양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면 어느 날 문득 무언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작 놀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일각에서는 문화와 세계화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역 문화를 보호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일은 세계화에 적응해나가는 방법이지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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