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전 세계적 잠재적 인재 기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전세계 성차별 보고서 2012'에 따르면 모든 국가의 기업 및 정부 고위직, 임금 및 권한 수준에서 남녀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나타난다.
여직원의 지식과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조직 자체의 성장에도 한계가 온다는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런 격차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성평등과 인간 자본 분과장 사디아 자히디(Saadia Zahidi)는 "연구 결과는 성차별을 철폐하려는 목적을 지닌 활동이 기업의 이익, 혁신, 부서별 성과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성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일 역시 성장하고 있는 우수한 인재풀에 접근할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2007년 출범시킨 연구 프로젝트 'Women Matter(여성 문제)'는 사디아 자히디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Women Matter'에서는 여성 경영진 비율이 높은 회사일수록 조직의 업무 수행 능력이나 실적이 증진된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고위 경영진의 성 다양성 수준이 높은 유럽의 89개 회사에 대한 연구를 보면 이들 회사의 평균 실적은 해당 부문의 실적에 비해 우수했는데, 구체적으로는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자기자본 수익률 11.4%(업계 평균 10.3%), 영업 실적(이자 지불 전 수익) 11.1%(업계 평균 5.8%), 주가 상승 64%(업계 평균 47%)로 나타났다.
포르투갈의 다양한 회사 인사부에서 일한 경력이 있고, 현재는 포르투갈의 캑사 제랄 드 데포지토스(Caixa Geral de Depósitos) 부회장인 페드로 타보르다(Pedro Taborda)는 이렇게 언급했다. "오늘날 여성은 전 세계 대학 졸업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OECD 회원국으로 범위를 좁히면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의 비율은 70%까지 올라갑니다. 회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인력의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지출의 70%를 좌우하는 여성
페드로 타보르다 부회장은 소비자 지출 대부분을 여성이 관리하기 때문에 성별 차이 문제가 특히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여성은 가계 지출의 70%를 주도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나 여성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51%에 불과합니다. 고객의 인구학적 구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기업이야말로 사업 감각이 좋은 기업입니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가 여성 근로자들의 재능을 동등하게 활용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2013년 글로벌 리서치회사인 GMI 레이팅스(GMI Ratings)는 '여성 이사'에 대한 연례 조사에서 전 세계의 거대 기업 이사회 중 여성 이사는 1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수치는 2011년 12월에 비해 0.5% 증가한 수치이고, 2009년에 비해서는 고작 1.7% 증가한 수치다. 이번 조사를 통해 지역 간 격차가 크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는 여성 이사 비중이 각각 36.1%, 27%, 26.8%였던 반면, 캐나다는 2012년과 동일한 13.1%에 머물렀다. 일본의 여성 이사 비율은 최악의 수준이어서 이사회 중 여성은 1.1%에 그쳤다.
“Each company has to identify practices that will suit best their gender gaps, their company culture and national policies.”
Saadia Zahidi
Senior director of Gender Parity and Human Capital at the World Economic Forum
2012년 맥킨지 보고서 '여성 문제 : 아시아적 관점'에 따르면, 아시아 전역에 있는 기업의 여성 이사 평균은 6%에 그쳤고 이중 8%만이 경영진에 참여했다. 2013년 4월 UN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는 여성에 대한 일자리 제한으로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매년 890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자신의 저서 '린 인(Lean In)'에서 이렇게 밝혔다. "남성이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교육 성취도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지만, 어떤 분야에서도 최고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때 여성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입법 활동
의회도 성차별이 심하기는 마찬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국가의 국회의원들은 기업 내 성평등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일에 지쳐버렸다. 벨기에, 프랑스,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은 기업 이사진 내의 성평등을 촉진할 법적 수단을 도입했다. 여성 구성원 비중이 54.5%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2020년까지 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을 40%까지 높이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런 쿼터제 도입을 모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2012년 3월 독일 가족부 장관 크리스티나 슈뢰더(Kristina Schröder)는 인터넷 슈피겔(Spiegel Online)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쿼터제 도입으로 형평성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불평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철강회사에서 언론사에 이르는 각양 각색의 회사들에게 일률적으로 쿼터를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입니다." 슈뢰더는 가족이 있는 여성은 가정을 돌볼 책임을 떠맡기 때문에 고위 경영진에게 요구되는 주당 80시간이라는 노동 시간을 감당할 수 없어서 승진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의원인 아스트리드 룰링(Astrid Lulling)도 여기에 동의한다. 아스트리드 롤링은 독일 방송국 도이체 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 총재를 여성이 맡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러한 자리에 오를 나이대의 여성은 수학, 금융, 경영, 경제를 전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쿼터제 옹호론자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유럽연합 제안을 책임지고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 비비안 레딩(Viviane Reding)은 이렇게 말했다. "쿼터제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쿼터제를 통해 바뀌게 될 세상에 대해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지젯(Esayjet) CEO 캐롤린 맥콜(Carolyn McCall)은 '매니지먼트 투데이(Management To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쿼터제에 반대합니다. 역풍을 맞아 원위치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사진의 성별이 지금보다 더 조화로워질 필요는 분명 있습니다. 쿼터제는 분명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재능 있는 여성 경영진의 등용문이 될 것입니다."
실질적인 활동
BAE 시스템과 록히드 마틴은 전통적으로 남성이 주도하는 군수산업체이지만 여성 최고 경영자를 임명해 사업을 이끌게 했다.
2012년 11월에 열린 제9차 연례 여성 리더십 포럼에서, 2013년부터 록히드 마틴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게 된 매릴린 휴슨(Marillyn Hewson)은 이렇게 말했다. "록히드 마틴은 오랜 세월 동안 재능 있는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여성 지도자들이 점차 고위직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정당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록히드 마틴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록히드 마틴이 여성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록히드 마틴은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록히드 마틴은 직원들이 승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했습니다."
4%
『포춘』 선정 500대 CEO 중
여성 CEO는 4%
Fortune Magazine
그러나 여직원이 최고 경영자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으려면 우선 회사가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회사 문화를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디아 자히디는 "가족 휴가제, 육아 지원, 성평등적 세금제도가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경제 참여도를 크게 개선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기업은 직원 평가, 목표 설정, 멘토 제도, 교육 제도, 여성의 재능 인식, 성과급, 책임성, 일과 생활의 조화 같은 현실적인 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어야 경제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수, 항공 및 보안 관련 세계적 회사인 BAE 시스템의 '다양성 및 포용' 부서 책임자인 도나 핼커드(Donna Halkyard)는 BAE 시스템은 바로 이런 프로그램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회사는 학교를 방문해 어린 소녀들이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과 관련된 직업에 대한 꿈을 갖도록 독려합니다. 현재 영국에서는 이들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이 5%에 불과하지만 BAE 시스템의 여성 인력 비중은 10% 이상입니다."
도나 핼커드는 린다 허드슨(Linda Hudson)이 런던 소재 BAE 시스템 plc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인 미국 소재 BAE 시스템의 CEO로서 글로벌 경영진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린다 허드슨 사장님은 성평등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그리고 여성의 성공 독려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습니다. 또한 미국 법인의 고위 임원들로 구성된 다양성 위원회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회사의 모든 사업 단계에서 여성이 적극적으로 회사 업무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잠재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E 시스템은 직원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글로벌 여성 가상 포럼(global women's virtual forum)도 그 중의 하나로, 포럼에는 회사의 모든 사업 단계에 포진한 여성들이 참여해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 서로 멘토가 되어주며 성공을 독려할 수 있다. "현재 우리 회사 이사회의 25%는 여성입니다. 회장님은 적어도 여성 이사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경영진의 여성 비율 역시 25%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 BAE 시스템의 목표였는데 2012년 6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BAE 시스템같은 회사는 독특한 기업 문화를 구축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 성의 다양성을 실천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다. 사디아 자히디는 "궁극적으로 모든 회사는 회사 내의 성차별, 그리고 이러한 성차별을 조장하는 회사 문화 및 국가 정책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방식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