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tech

미래 30년을 위한 도전

Youngjin Choi
20 November 2016

2016년 3월,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이노디자인 사무실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이노디자인은 입주 건물의 한 층을 모두 사용할 정도로 넓지만 몰려든 사람들로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환한 웃음을 지은 사람들은 독특한 실내 디자인과 조형물이 가득한 사무실을 둘러봤다. 이노디자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제품들을 보면서 시대를 앞선 디자인에 놀라기도 했다.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한 이노디자인 사무실 한쪽에서 안경을 쓴 조그마한 키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그와 인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노디자인 김영세 회장이다.

이노디자인의 30주년 기념식을 축하하 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이노디자인 을 찾았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KETI(전자부품연구원),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의 기관장을 비롯해 관계자뿐만 아니 라 벤처캐피탈리스트, 언론인 등이 모여 들었 다. 사람들에게 이노디자인 30년 역사를 기 록한 동영상을 보여준 김영세 회장은 "지난 198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이노디자인을 창립했다. 지난 십수년 전부터 기획하던 디자 인 지원센터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런칭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발표했다. 김 회장이 말하는 디자인 지원센터는 '디자인 액셀러레이터 랩'이다. "기술+디자인+ 투자가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의 DXLLAB은 참여자 모두가 윈-윈-윈하는 세계 최 초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세계 최초 '디자인 액셀러레 이터 랩(DXL-Lab)'

벌써 30년이다. 1986년 3월 한국에서 온 조 그만 키의 산업디자이너는 미국 IT 산업의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이라는 이름의 디자인센터를 세웠다. 당시 실리콘밸 리에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썬마이크로시 스템즈 같은 하이테크 글로벌 기업이 자리 를 잡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인이 세운 최초 의 디자인센터와 손을 잡고 싶어했다. 혁신 을 추구하는 철학이 미국에서도 통한 것. 한 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시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실력이라 는 기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IDEA'에서 금, 은, 동을 휩쓸고 영국의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가 선정한 최우수제품상 수상은 그의 실력을 대변해 준다. 차별을 이겨내고 거둬 낸 성공에 대해 김 회장은 "한국에서 경험하 지 못한 문화적 쇼크가 내 활동의 원천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사진 제공 : 이노디자인)

이노는 '혁신(Innovation)'을 뜻한다. 지금은 흔해 빠진 단어지만, 30년 전 이노베이션이 라는 단어는 미국에서도 사용빈도가 낮았다. "그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슴이 떨렸다"고 말 하는 김 회장은 자신이 설립한 디자인센터 에 '이노'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김 회장은 이 노디자인 설립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전 에 나섰다. 세계 최초의 디자인 액셀러레이 터 랩(DXL-Lab) 출범이다. "이노디자인의 미래 30년을 위한 도전"이라고 말할 정도로 과감한 승부수다.

액셀러레이터란 창업 초기 단계에서 단순히 투자에 그치지 않고 운영과 전략 등의 노하 우를 전수해 주는 업체를 통칭한다. 미국의 와이컴비네이터, 유럽의 시드캠프, 한국의 퓨처플레이와 프라이머 같은 곳이 유명한 액셀러레이터로 꼽힌다. 돈과 인력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액셀러레이터의 도 움으로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다. 액셀러레 이터의 손을 잡느냐 마느냐에 따라 생존 여 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DXL-Lab의 캐치프레이즈 'DESIGN TOGETHER'

하지만 하드웨어 기반의 제조업 스타트업은 기존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면이 있다.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이폰이나 갤럭시 시리즈를 뛰어넘는 운영 체제와 기술력만 가지고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받쳐줄 수 있는 하드웨어가 필수적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의 절묘한 결합은 디자인이 있어야만 가 능하다. 김 회장은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을 도와주려고 나선 것이다. 1986년 이노디자인 USA를 설립한 후 30년 동안 이노디자인의 성공시대를 썼다면, DXL-Lab 설립은 이노디자인의 미래 30년 을 끌고 나갈 거대한 프로젝트다. DXL-Lab 의 캐치프레이즈는 'DESIGN TOGETHER!(함 께 디자인하자!)'이다. 김 회장의 철학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정상에 오른 디자이너의 다음 꿈은 많은 후배들을 데뷔시키는 것"이 라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DXL-Lab은 디자인 플랫폼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제조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은 이 플 랫폼에 자신의 프로젝트를 올린다. 김 회장 은 "IoT 분야 스타트업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 을 요청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플랫폼에 올라온 프로젝트를 보고 함께 해보고 싶은 디자이너라면 누구든지 참여를 신청할 수 있다. 이노디자인 소속의 디자이너뿐만 아니 라, 외부 디자이너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 벤처캐피탈도 이 플랫폼에 올라온 프로젝트 중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투자를 할 수 있다. "미래 성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는 프로젝트에는 이노디자인도 직접 투자할 것" 이라고 밝혔다. 하나의 플랫폼에 스타트업, 디자이너, 벤처캐피탈이 모두 모이는 것이다. "이노디자인은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외부 디자이 너의 참여다. 후배 디자이너를 키우고 싶은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노디자인에 들 어오고 싶은 디자이너는 줄을 섰다. 하지만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DXL-Lab이 후 배 디자이너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판이 되 기를 소망했다.

'디자인 퍼스트' 실행

2015년 9월에는 세계적인 3D 디자인 솔루션 제작업체인 다쏘시스템이 DXL-Lab에 클라우 드 기반의 3D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공급하는 MOU를 맺었다. 김 회장은 "다쏘시스템은 11개 의 크리에이티브 툴을 제공한다"고 자랑했다. 김 회장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과감한 투자 도 결정했다. 2016년 하반기 서울 역삼동에 완공된 7층 건물을 DXL-Lab을 위해 사용하 기로 했다. 경기도 판교에 있는 이노디자인센 터도 DXL-Lab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본부로 사용된다. 이노디자인 USA는 한국 스타트업 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교두보 역할을 맡게된다. 30년 동안 실리콘밸리에서 쌓은 디자 인센터의 명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DXL-Lab은 갑자기 나온 생각이 아니다. 15년 전부터 생각한 것을 지금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1997년 오스 트레일리아에서 열린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 디자인 퍼스트'라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이 때 발표한 내용을 15년이 지난 후에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그가 말한 '디자인 퍼스트'는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는 제품을 이야기한다. "디자이너는 세상의 조연이 아니다. 이젠 주 연이다"라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이노디자인이 직접 투자하고 디자인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하이코어의 전기자전거. 이노디자인이 보유한 접는 자전거 특허가 적용됐다. (사진 제공 : 이노디자인)

DXL-LAB 첫 작품은 '전기자전거'

디자인 액셀러레이터의 구체화를 위해 김 회장은 하나의 스타트업과 미리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전기자전거 휠을 제작하는 하이 코어(대표 박동현)와 손을 잡은 것. "지난해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하이코어 관련 기사를 읽고 바로 연락해서 만났다"고 김 대표는 회고했다. 하이코어는 전기자전거 구동에 필요한 배터리와 모터 등을 모두 뒷바퀴 휠 안에 설치한 스타트업 이다. 이 휠을 자전거에 설치하면 일반 자전 거가 전기자전거가 된다. 김 회장은 휠 특허 를 가진 하이코어와 손을 잡고, 이노디자인 의 특허인 접는 자전거 프레임을 제공하게 된다. "이노디자인의 디자인과 기술력이 만 나면 상품 가치가 훨씬 커진다. 하이코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자 신했다. DXL-Lab의 첫 번째 작품이 될 전 기자전거는 3월에 선보였다. 하이코어처럼 김 회장과 미팅을 진행한 스 타트업은 10여 곳 정도다. 대부분 기술력은 높지만 상품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곳이다. 미팅을 통해 이노디자인이 디자인과 투자까 지 결정한 곳은 4곳이다. "엔지니어들은 기 술은 좋지만 물건을 어떻게 만들고 팔아야 할지를 전혀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기술+ 디자인+투자'가 한 곳에서 이뤄지는 DXLLab을 김 회장은 "모두 윈-윈-윈 하는 플랫 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디자인 시대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 움직임의 시작이 DXL-Lab이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산하 기업 100개 만드는 것 이 목표

이노디자인 USA를 시작으로 김 회장은 30 년 동안 입지전적의 성공 스토리를 썼다. 그 가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중학 교 3학년 때였다. 그는 "우연히 집에 있던 산 업디자인 관련 잡지를 보고 산업디자이너라 는 직업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디 자이너로 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30명 정원의 서울대 응용 미술과에 입학했고, 그는 산업디자인을 선택했다. 산업디자인을 선택한 동기는 5~6명에 그쳤다. 그만큼 당시에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비전과 미래가 밝지 않았다. "대학생 때 디자인에 미쳐 살았다. 다른 수업은 잘 듣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대학생활은 디자인이 아니면 음악이었다. 당시 학교를 같이 다녔 던 가수 김민기와 함께 '도깨비 두 마리'라는 그룹을 결성해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74년 서울대를 졸업한 후 바로 미국 시카 고주에 있는 일리노이대학교 산업디자인 석 사과정에 입학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산업디자인 혁명 기지였다. 그곳의 핵심 멤 버들이 미국에 들어온 곳이 시카고여서 일 리노이대학을 택했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 다. 바우하우스(독일어로 '건축의 집'이라는 뜻)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에서 설립되어 운영된 학교다. 현대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준 곳이지만, 1933년 나치에 의해 강제로 폐쇄됐다. 일리노이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듀폰에서 디 자인 컨설팅을 했다. 디자이너로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1980년 자신이 공부했던 일리노 이대학교에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강단에 설 수 있었다. 남들은 큰 꿈을 이룬 것이라 말 할 수 있는 자리였다.

1999년 이노디자인코리아 설립

김 회장은 3년 만에 그 좋다는 교수 자리를 그만뒀다. "교수로 일하면서 IBM, 마이크로 소프트 등과 손을 잡고 일했다. 도저히 학생 들에게 시간을 많이 쓸 수가 없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내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도 한몫 했다. 미국 디자인 컨설팅 그룹 인 GVO에서 프로덕트 디자인 매니저로 일 한 후, 1986년 실리콘밸리에 자신이 직접 설 계한 이노디자인 USA를 설립했다.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커다란 움직임이 일어 나고 있었다. 일리노이주에 남아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로벌 기업이 함께 일하고 싶은 디자인회 사로 성장시킨 후 1999년 이노디자인코리아 설립으로 이어졌다. "디자인은 이제 테크놀 로지와 접목해야 한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2004년 베이징 사무소 오픈, 2010년 이노디 자인 도쿄를 설립하면서 글로벌 디자인기업 으로 탈바꿈했다. 동양매직 휴대용 가스버너, LG전자 양문형 냉장고, 삼성전자 가로본능 휴대폰,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 라네즈 거 울 슬라이딩 팩트같은 히트상품을 만들어내 면서 영국 디자인 전문지 'DESIGN'의 커버 스토리에 소개되기도 했다. 독일 iF Desging Award, 독일 REDDOT 디 자인 어워드, 미국 IDEA 디자인 어워드 등 세계적인 공모전 수상 목록은 30여 개가 넘 는다. 2009년 일본경제지 '닛케이 BP'는 '세 계 10대 디자인 회사' 중 한 곳으로 이노디 자인을 선정한 이유다. 이제 그는 자신의 명성을 한국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는데 사용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능력으로 한국의 산업을 키울 수 있는 방아쇠(트리거) 역할을 하고 싶다"며 김 회장은 DXL-Lab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 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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