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엔진을 깨우다

엔지니어는 없는 시장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두산 CTO의 도전

Deuk-Jin Cho
8 May 2015

한국의 자동차산업에서 '이현순' 이라는 이름은 맨 앞자리에 위치한다. 자동차 엔진을 최초로 국산화한 그는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역임하고 2011년 두산으로 옮겼다. 두산그룹의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아 연료전지, 무인건설장비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캠퍼스 대 학원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창 잘 나가던 GM에서 근무하던 이현순. 하지만 그는 1984년 '한국자동차 산 업의신화'정주영현대차창업자가내민손 을 덥석 잡았다. 이 부회장은 "정주영 창업자 가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독자개발하고 싶다, 나를 도와 달라'고 했다"며 "그의 열정과 의지 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에서 한 사람의 연구원으로 일생 을마치는것보다이제막시작하는고국의 자동차산업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뛰어들고 보니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그야말로 불모지였다. 당시 현대차는 연 9만 7000대 정도를 생산하며 글로벌 27 개 자동차기업 중 23위에 머물러 있었다. 독 자기술이란것도없었다.당시일본미쓰비 시 기술자들이 와서 상주했으며, 일본어로 되어 있는 도면을 보며 일본 기술자의 주문 대로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많지않은사람이무슨재주로엔진 을 개발하겠다는 거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넘어야할 벽이었다. 

회사안팎의많은반대와시련을어렵게극 복한 그는 '신엔진 개발 계획'을 주도하면서 1991년 마침내 한국 최초의 독자 엔진 1.5리 터급 가솔린 '알파엔진'을 개발했다. 알파엔 진은출력,연비모두기존외국엔진을뛰 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9년까지 경차 에서 대형승용차에 이르는 가솔린 엔진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2002년에는 '세타엔진'을 개발해 미국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일본 미 쓰비시에 기술을 수출했다. 이현순은 2005 년 현대차 연구개발총괄 사장에 이어 2008 년 연구개발총괄 부회장에 오르며 현대차그 룹의 기술 선진화를 이끌었다. 

“ 엔지니어는 없는 시장도 만들어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빌 게이츠의 생각이고, 스티브 잡스가 걸어온 길입니다. 융복합 기술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엔지니어의 길입니다.” 

이현순
두산 부회장

반대를 무릅쓰고 혁신을 주도했던 이현순 부회장은 당시를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말 했다. "엔지니어는 없는 시장도 만들어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빌 게이츠의 생각이고, 스 티브 잡스가 걸어온 길입니다. 융복합 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엔지니어의 길입니다." 

한국이 다른 경쟁국에 비해 100년 정도 늦게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 난해 현대차그룹은 800만대를 생산하며 글 로벌 탑5위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이현순 부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디젤 엔진 개발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본 사 재무파트에선 난색을 표했다. '버스, 트럭 용이 있으면 됐지 승용차에 디젤엔진이 무 슨 소용 있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향후 10 년내디젤엔진이자동차시장을잠식할것' 이라는 이현순의 판단은 꺾이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승용차용 디젤 엔진을 개발하여 현재 현대차는 경쟁사인 도요타, 혼다, 닛산 이 보유한 것보다 많은 종류의 디젤엔진을 갖추었다.

이뿐 아니라 현대 기아차는 상용차용 디젤 엔진의 풀 라인업도 구축하여 전 세계시장 에 수출하고 있다. 

기회와 도전

이현순 부회장은 2011년 여름 두산인프라코 어로 자리를 옮겼다. 1500마력의 차세대 전 차엔진 개발에 어려움을 겪던 두산인프라코 어가 SOS를 쳤다. 2,000cc급 중형승용차의 10배에 달하는 1,500마력의 전차엔진은 미국 과영국도개발에실패한최첨단기술로,독 일의 일부 기업만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엔진 개발에 많은 노하우 를갖고있는이부회장이필요했던것이다. 그는"2년동안급한불을끄느라정신없었 다"며 "재설계와 내구력 강화를 통해 국방부 의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7년 이상 지지 부진끌어오던사업은그의취임2년만에 마무리됐다.

2011년 두산의 부회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두 산인프라코어의 R&D 기능은 위치적으로 4곳 에 분산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협업이 중요한 경쟁력인 건설장비산업(CE, Construction Equipment)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 각했다. 그는 2014년 인천에 두산인프라코어 글로벌R&D센터를 건설했다. 1,000억원을 투 자해 12층 규모로 만든 이곳엔 연구인력 1,000명이 근무하고 있다. 건설기계와 엔진 부문 연구 인력을 한 곳에 모아 시너지를 극대화한 것이다. 올해엔 그룹종합연구소인 DRC(두산리서치컴플렉스) 건설에 들어간다. 2017년 초에 완공되면 두산그룹의 원천기술 개발본부가 될 예상이다. 총 3,500억원이 투 자된다.

이 부회장은 2013년 중반 신설된 두산그룹 의 총괄 CTO를 맡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뿐 아니라 두산중공업, 두산엔진 등 그룹 전 체 계열사의 기술력 향상을 책임지게 된 것 이다. 그는 "소비재 중심의 두산그룹이 중공 업으로 전환할 당시만 해도 국제경기가 호 황기여서 매출이 높았다"며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동시에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면서 시장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말했 다. "시장 규모는 줄고 중국의 시장잠식은 높아져 일종의 협공을 당하고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신기술, 신제품이 필요합니다. 기 술력만이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다고 믿어요. 두산인프라코어 글로벌R&D센터, 그 룹종합연구소 DRC(두산리서치컴플렉스) 등 이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가 지향하는 두산의 기술개발은 연료전지 개발과 건설장비의 무인화다. 지난해 두산은 한국의 퓨얼셀파워, 미국의 클리어에지파워 등 연료전지 회사를 속속 인수하면서 사업화 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의 원자력, 화력, 열병합발전 등 에너지 산업에 더하여 플러스 클린에너지인 연료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 쪽 도 강화했다. 이 부회장은 "신재생에너지 중 연료전지가 가장 현실성이 있다"며 "한국에서 도 신규 발전소 건설시 10%에 해당하는 친 환경발전소를 만들도록 규제하고 있어 연료 전지산업의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를 앞세워 건설·광산기계의 무인화에도 매진할 계획이다. 최근 국제전 자제품박람회(CES)에서 무인차가 화제가 된 것과 같이 결국은 공사장비도 무인화, 정교함이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도로를 내기 위해 땅을 평탄화 할 때 1mm 이내의 오차로 깎아내는 장비를 무인화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3차원으로 미리 스캐닝을 한 후 모델링 후 평탄화 작 업하는 것"이라며 "불가능한듯 싶지만 기술 개발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현순 부회장, 두산그룹 (Image © Sunghyun Kim)

당신의 엔진을 깨워라

전문경영인으로 매 선택의 순간마다 그가 고집스럽게 지켰던 것은 '미래지향적 가치' 여부였다. 그는 "외부에서 볼 때 경영자의 평가는 '주가'다. 주가를 끌어올리려면 순이 익을 많이 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미래 성장성이라는 비전과 충돌한다"며 "미래성장 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한 다"고 강조했다. "눈앞의 것이 단 맛이 난다 고 삼켰다가 점점 독으로 변해가는 경우가 많아요. 당장 실익은 없어도 5년, 10년 뒤 우리가 리더가 될 수 있는가를 제대로 직시 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특히 불확실성을 안 고 있는 첨단 기술에 투자해야 합니다. 확 실한 것은 이미 누군가 뛰어들었다는 것이 고 결국 2등에 머물고 맙니다." 

그는 특히 기술의 융복합이 중요하다고 강 조한다. 융복합 기술을 누가 더 빨리 개척하 고 개발해고 상품화 하느냐가 성공의 관건 이라는 것이다. 그는 "창의력,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정부지원, 규제 철폐 등 필요한 조건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엔지니어의 열정" 이라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이 의외로 자기가 해 본 것만 하려는 습성이 있는데 도전정신, 열정이 없는 엔지니어는 숨 쉬지 않는 엔지 니어라는 것이다. "특히 요즘 젊은 엔지니어 들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보십시오. 누구나 해도 될 만한 일들은 이미 다 완성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 다가 못한, 어려운 일만 남아있죠. 이것을 성취하려면 쉽게 포기해선 안 됩니다. 열 번, 스무 번이라도 도전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그는 '엔지니어 멘토'를 자 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객원교수,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기계공학과 (Mechanical Engineering) 석좌 교수로 임 명돼 후배 양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엔 중역들에게 잔소리가 늘었어요. 젊 은 엔지니어들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는 주 문이죠. '여러분들의 업무 0순위는 나보다 더 나은 후배를 키우는 것이다, 훌륭한 후 배 엔지니어를 내가 키우는 것이다’라고 강조해요. 그 것이 기업은 물론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 (Knowledge), 기술(Skill), 경험(Experience) 을 나누어 시행착오를 줄여야 합니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 '놀리지 매니지먼 트'(Knowledge Management)'를 구축해야 합니다."

지난해 말엔 저서 <내 안에 잠든 엔진을 깨 워라>도 펴냈다. "판사는 평생 수십 명의 생 사를 좌우하고, 의사는 평생 수천 명의 생 사를 좌우하고, 엔지니어는 평생 수억 명의 삶을 좌우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 

Related resources

Subscribe

Register here to receive a monthly update on our newest con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