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선진국들은 가난한 저개발국가를 "제3세계"라는 이름으로 분류했다. 1981년 네덜란드 기업가 안토이너 판 아흐트말(Antoine van Agtmael)이 제3세계 국가 중 성장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국가들을 지칭하는 "이머징 마 켓"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면서 엄청난 투 자가 촉발되었다. 2001년 골드만 삭스는 브라 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지칭하는 브릭스 (BRICs)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전 세계 부유국들의 성장률을 뛰어넘는 눈부 신 호황을 누린 브릭스 국가에 대한 해외 직 접 투자가 쇄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브릭스 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북미, 유럽, 그리고 일 본 경제를 합한 것보다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이것은 지나친 낙관론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브릭스 국가들이 겪고 있는 경제, 금융, 또는 정치적 난맥상의 징후를 알 리는 머릿기사들로 요란하다. 브라질에서는 견고하던 정치 지도자들의 입지와 성장세가 하층민의 저항에 부딪치면서 약화되었고, 러 시아는 원자재 개발을 기반으로 하는 권위주 의적 모델로 되돌아갔으며, 인도는 금융 위기 타개에 필요한 개혁에 실패했고, 중국은 성장 률이 두 자릿수에서 7.5% 대로 내려 앉으면 서 수출이 둔화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성장 률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는 하다.
“ 저는 값싼 노동력 자체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리스크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모런
컨트롤 리스크, 정치 리스크 부문 부사장
미스트(MIST) 국가와 시베츠(CIVET) 국가
브릭스에 이어 경제 전망이 밝은 국가들을 두 부류로 나누고 있는데, 하나는 멕시코, 인 도네시아, 대한민국, 터키를 지칭하는 미스트 (MIST)이고 다른 하나는 콜롬비아, 인도네시 아, 베트남, 이집트,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을 지칭하는 시베츠(CIVETS)이다. 여기에 속 하는 국가 중에는 "신흥(emerging)"이라는 말 에 적합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 산업 및 기술 국가 반 열에 올라있고, 삼성전자, LG전자, 그리고 현 대자동차는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기업들 이다. 베트남의 경우에는 중앙집중식 공산주 의 체제를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집트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고, 남 아프리카 공화국은 정치적 난맥과 노동 문제 확대로 어려움이 많다.
어느 국가가 포스트 브릭스 명단에 이름을 올라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없지만, 브릭스 국가들이 세계의 경제 발전소가 될 수 있었던 값싼 노동력은 예전만큼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원칙이 대세가 되고 있다.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컨설팅 기업 컨트 롤 리스크의 정치 리스크 부문 부사장 마이 클 모런(Michael Moran)은 "값싼 노동력 자 체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리스크라고 생각 합니다."고 말했다. "중국의 애플에서부터 방 글라데시의 의류 업계에 이르기까지, 서류 상 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별다른 규제가 없기 때 문에 실제적으로는 부정적인 측면이 엄청나 게 많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 요소에는 부패, 열악 한 안전 기준, 의료 서비스 및 인권 침해, 환 경 악화 등이 포함된다. 마이클 모런은 "제조 에 필요한 공급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기업 의 리스크는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 시장에서 직관적으로 알아채기 시작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미국과 북유럽이 본래의 경쟁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안토이너 판 아흐트말
가르텐 로스코프 선임 자문가
전문가의 영역
타룬 칸나는 이제 서구의 다국적 기업들은 분야별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 그리 고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유망한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를 선별해 투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주 장한다. 바로 이것이 포스트 브릭스 시대에 맞춰 부각되는 새로운 투자 원칙이다.
타룬 칸나의 말에 따르면, 인도는 최저 비용 으로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혁신을 이루 고 있고, 대한민국은 브로드밴드 통신의 본 거지로 자리잡았으며, 브라질은 바이오 연료 개발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고, 콜롬비아는 디지털 기업의 상승세를 이어갈 세 가지 기술 육성 실험에 나서고 있으며, 케냐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
“ 금융 서비스나 휴대폰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면 현재 케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룰 것입니다.”
타룬 칸나A
하버드 대학교 남아시아 연구소 소장
포스트 브릭스 국가 명단에 케냐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인 접 국가 소말리아에서 횡행하고 있는 테러 문제 때문에 앞으로도 포스트 브릭스 국가 명단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케냐가 모바일 결제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는 사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지역의 한 국가가 국제적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아 이디어를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할만하다.
한 휴대폰 업체가 케냐에서 사업 기회를 찾 아내기 전만해도 케냐는 금융 산업이 전무 하다시피한 국가였다. 마이클 모런은 "신용 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외 자산가들과 친분이 있거나 은행 안에 친인척이라도 있 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케냐 의 M-Pesa 시스템 덕분에 휴대폰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요금을 결제하고 현금을 이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클 모런은 "애플 이 음악 산업에 투자했던 것처럼 휴대폰 업 체는 자신들은 은행에 투자할 수 있을 것으 로 생각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휴대 폰 업체는 은행과 고객 사이를 파고들어서 신용을 창출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케냐의 M-Pesa 시스템(M은 모바일을 의미 하고 Pesa는 스와힐리어로 돈을 의미한다.) 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모바일 결제 시스템으로 인식되고 있다. 타룬 칸나는 "금 융 서비스나 휴대폰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현재 케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시아에서 다크 호스로 지목되는 두 국가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말레 이시아는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 상황, 뛰어 난 언어능력(말레이시아어, 영어, 중국어), 성 공한 글로벌 기업의 등장에 힘입어 경제 호 황을 누리고 있고, 필리핀은 영어 능력과 고 속 통신망을 활용할 수 있는 숙련된 노동력 을 토대로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과거 인도에 자리 잡았던 비영업 부문 및 콜 센 터 부문은 미국식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또한 문화적 연결 고리가 있는 필리핀으로 이동하고 있다.
부상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브라질 외에도 라틴 아메리카에는 투자할만 한 국가가 많이 남아 있다. 영원한 맞수인 두 경쟁국 콜럼비아와 멕시코가 잠에서 깨 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콜럼비아 대통령 후안 마누엘 산토스(Juan Manuel Santos) 는 마약 카르텔과 폭동이라는 시련을 딛고 해외로부터의 투자를 기록적인 수준으로 끌 어올리면서 승승장구 중이다. 수십여 곳의 창업 기업이 콜럼비아 창업보육센터에서 육 성되고 있다. 중국이 콜럼비아의 천연자원에 눈을 돌리면서 콜럼비아는 매년 5%라는 안 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중산 층이 부상하고 있다.
멕시코는 새로 선출된 엔리케 페냐 니에토 (Enrique Peña Nieto) 대통령의 주도 하에 대 대적인 개혁에 나서고 있다. 석유를 독점하던 국영기업 페멕스(PEMEX)를 개방하고 준독점 전화기업의 권력을 제한한 멕시코는 교육 체 계 개혁과 마약 관련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국 제조업체들의 막대한 투자 도 이어지고 있다. 마이클 모런은 "멕시코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추켜세웠다.
차기 투자대상국가를 선택하려는 서구 제조 업체들은 세 번째 원칙도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보다도 한층 정교한 위치 선정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미국 뉴욕주 위트 필드에 위치한 비아트랜(Viatran)의 존 비아 지오니(John Biagioni) 사장은 제조업체들이 단일 이머징 마켓에 부응하기 위해 또는 미 국 시장에 상품을 공급에 필요한 아웃소싱 을 위해 공장을 설립하기 보다는 비용효율 성을 높일 수 있는 통합된 지역 허브 창출 을 위해 애쓰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비아 트랜은 자동차산업, 항공우주산업, 석유 및 가스 산업에 압력 레벨 트랜스미터 및 유량 레벨 트랜스미터를 공급하는 기업이다. 다이 니스코의 자회사인 비아트랜은 자사의 틈새 상품을 20개국에 공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존 비아지오니는 기업이 자사 공장의 총 소유비용(TOC)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대변하는 영향력 있는 제조 업자로 부상했다. 과거에는 높은 이직율, 높 은 교육 비용, 높은 임금 상승률, 치솟는 운 반비, 조직화에 소요되는 전반적인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부분적인 노동 비율만을 토 대로 의사결정을 했다. 존 비아지오니는 제 조업체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자문해보라 고 촉구한다. "다른 기업을 쫓아가는 데에만 급급한가요? 아니면 세계적인 제조업체로 영원히 남을 전략을 수립하고 있나요? 저는 영리한 분이라면 특정 지역에 필요한 제품 을 설계하고 해당 지역에서 제조하고 서비 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서구의 귀환
포스트 브릭스 시대의 승자로는 미국, 캐나 다, 호주, 독일, 영국 등이 있다. 미국 워싱턴 D. C. 소재 가르텐 로스코프의 선임 자문가 로 활동하고 있는 안토이너 판 아흐트말은 "중국과 기타 (브릭스) 국가들의 경쟁력은 과 대평가된 반면, 미국의 경쟁력은 저평가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고 있 는 내용, 그리고 시장에서 직관적으로 알아 채기 시작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미국과 북 유럽이 본래의 경쟁력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컨설팅 기업인 A. T. 커니가 최근 발표한 해 외직접투자심리지수도 안토이너 판 아흐트 말의 관측을 뒷받침한다. 해외직접투자심리 지수에 따르면 2012년 4위를 차지했던 미국 은 2013년 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 대기업들 이 투자할 의향이 있는 국가 1위에 올랐다. 이것은 200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2012 년 20위를 차지했던) 캐나다와 (과거에는 순 위권에 들지 못했던) 멕시코는 10위권에 진 입했다. 순위가 크게 오른 국가로는 프랑스, 일본, 스페인, 스위스, 폴란드 등이 있다. 2010년 또는 2012년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 지 못했던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각각 22위 와 23위를 차지했다. 순위가 크게 하락한 국 가에는 (2012년 9위를 차지했지만 2013년 24 위로 추락한) 인도네시아와 (2012년 10위를 차지했지만 2013년 25위로 추락한) 말레이시 아가 있지만, 이들 국가 모두 아직은 25위권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중국의 제조 비용과 인건비가 크게 올랐고, 세계적 으로 운송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 시 의류업계의 높은 화재율은 미국의 월마 트에서 스웨덴의 H&M에 이르는 여러 소매 업체들에게 손해를 끼쳤다. 기술적인 측면에 서, 이제 서구 기업들은 혁신과 제조 노력 사이의 "피드백 고리"를 단축시켜야 더 많은 혁신을 한층 신속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차기의 유망 시장의 일부는 북미, 유럽, 동아시아의 인구 가 집중된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핫마켓이 다시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