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소화계에는 평균적으로 2만 여종의 박테리아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 마이크로바이옴이라 불리는 이와 같은 박테리아는 당뇨병, 비만, 천식, 자가면역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에 연계되어 있다. 한편 인간 마이크로바이옴은 우울증 및 정신 건강 전반에도 연계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배열 장치로 DNA를 해독해 박테리아를 규명할 수 있는데, 이는 인간 건강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여는데 기여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의 연구자들이 그 지식을 앞다퉈 현장에 적용하고 있는데 그 복잡성은 놀라울 지경이다.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박테리아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알지 못하며, 박테리아가 숙주인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메카니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는 지역이 다르면 체내에 서식하는 박테리아 집단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박테리아 스프(bacterial soup)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질병이 특정 민족에게는 자주 발생하는 이유를 밝힐 수 있으리라고 내다본다. 또한 많은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소화계 내 박테리아를 조합해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미지의 복합체
이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자 인간의 소화계에 서식하는 다양한 미생물을 이해하기 위한 오픈-소스 과학 프로젝트로는 세계 최대 프로젝트인 아메리칸 거트(American Gut)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롭 나이트(Rob Knight)는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를 선도하는 과학자 중 한 명이다.
롭 나이트는 “마이크로바이옴의 복잡성은 암의 복잡성을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는데 "관련된 유전자수가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구성 가짓수나 세포 간 인력(引力) 가짓수도 엄청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이트는 "인간 유전자보다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가 더 많으므로 유전자간 연계의 가짓수도 더 많다”고 얘기한다.
순수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열쇠를 얻으면 유전자 해독 비용이 내려간다. 즉 DNA 배열 장치의 혁명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이트는 “문제는 바로 DNA 배열"이라고 말한다. “각 DNA 배열 배치에는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배열 장치에 넣을 많은 샘플을 축적해야 합니다.”
중국 선전에 위치한 BGI는 과거 베이징 유전자 연구소(Beijing Genomics Institute)로 알려졌던 연구소로 DNA 배열 장치의 세계 최대 구매자로 떠올랐다. BGI는 유전자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탐구하고 있는데, 신생아의 소화계에 존재하는 박테리아 연구도 포함되어 있다.
데이터 해독
그러나 마이크로바이옴의 복잡성은 잘 정리된 빅데이터 조차도 애들 장난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다. 아메리칸 거트 프로젝트는 캘리포니아주 칼스바드에 위치한 민간 바이오테크 기업인 모 바이오 연구소(MO BIO Laboratories)의 DNA 추출 프로토콜을 활용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슈퍼컴퓨터 네트워크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제공업체인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s)를 통해 처리한다.
빅데이터, 슈퍼컴퓨팅,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이 모든 영역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영역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나이트는 이렇게 비유한다. “케이크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밀가루일까요, 달걀일까요, 설탕일까요? 중요한 점은 하나라도 빠지면 케이크를 만들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6천여 명의 사람들이 아메리칸 거트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소화계 내 박테리아 분석에 참가했다. 그러나 데이터의 복잡성은 의사나 해독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어려움을 안겼다.
과학의 융합
비벌리 힐스에 위치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분자의학 응용 센터(Center for Applied Molecular Medicine) 센터장이자 의학 및 공학을 담당하는 데이비드 애거스(David Agus)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까지 연구분야를 넓히고 있는 저명한 암 연구자로, 과학자들이 마이크로바이옴의 비밀을 풀고 싶다면 기술과는 별개로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애거스에 따르면 그가 이끌고 있는 팀에는 물리학자, 수학자, 수학 모델연구자, 생물학자가 모여 있다고 한다. 애거스는 "우리 팀은 십여 년 전만해도 이설로 여겨졌던 과학을 융합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바로 과학 융합이 이와 같이 까다로운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우리 팀은 십여 년 전만해도 이설로 여겨졌던 과학을 융합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과학을 융합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바로 과학 융합이 이와 같이 까다로운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데이비드 애거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암 연구자
애거스가 이끄는 팀은 대규모 병렬 컴퓨팅에 의존한다. 대규모 병렬 컴퓨팅은 첨단 슈퍼컴퓨팅으로 다량의 프로세서를 사용하거나 다량의 분리된 컴퓨터를 활용해 협업 컴퓨팅을 동시에 수행하는 방식이다.
애거스는 박테리아 개체 하나가 다른 박테리아 대체 하나와 상호작용하는 방식 같은 데이터 지점을 모두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련한 생각이라고 주장한다.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로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추정치에 근거한 “조악한”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애거스는 말했다. 여기에서 조악한 이론이란 흡연이 폐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거의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아무도 정확한 연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애거스는 새롭게 부상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식 접근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새롭게 등장한 복잡한 시스템입니다. 환원적 접근법을 통해 모든 데이터 지점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모델링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업계의 반응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음에도 이를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산업이 다양할 것이라는 조짐이 보인다. 예를 들어 항생제가 듣지 않아 매년 수 천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슈퍼 박테리아”인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lostridium difficile, C. diff)에 대해 의료계는 대변 미생물균 이식법을 활용해 대처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 기증한 배설물의 미생물균을 결장을 통해 환자에게 주입해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이 방법은 미국에서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을 제거하는데 효과를 보였지만 미국 FDA는 그 밖의 박테리아 불균형이 나타날 위험성이 있다며 이 방법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제조업체는 대변 미생물균을 삼킬 수 있도록 처리한 먹는 약을 개발했다. 목적은 동일하다. 소화계 내 박테리아 균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주목할만한 또 다른 분야로는 활생균 분야를 들 수 있다. 활생균(프로바이오틱스, probiotics)를 섭취하면 “이로운” 박테리아 수를 늘릴 수 있는데,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이오의료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칼 세돈(Karl Seddon)이 발견한 하나의 돌파구를 활용하면 소화관을 통과해 대장에 도달하기까지 활생균이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영국에 위치한 엘릭사 프로바이오틱(Elixa Probiotic Limited)이 개발한 각 약제가 일단 대장에 도달하면 평범한 방식으로 활생균을 공급하는 경우에 비해 50배 더 많은 이로운 박테리아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일 프로그램을 시행한 엘릭사는 평범한 활생균 섭취가 사용자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이로운” 박테리아를 100억 개 추가하는데 비해 자사 캡슐을 섭취한 경우에는 섭취자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이로운” 박테리아가 3조개 추가된다고 보고한다. 엘릭사가 개발한 캡슐은 식품으로 간주되어 많은 지역에서 처방전 없이도 쉽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바꾸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박테리아 사이의 상호작용 및 박테리아와 숙주인 인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고 깊게 이해하려는 목적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기법은 무딘 도구에 불과하다.
기존 제품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마이크로바이옴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건강과 관련된 특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제약업체나 식품회사 또는 양측 모두가 꽤 오랜 시간 동안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 현재는 식품산업이 유리한 상황이다. 제약회사는 대개 특정한 분자를 찾아내 특허를 획득한 뒤 임상 시험을 거쳐 정부의 규제 기관으로부터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의 수학적 복잡성만으로도 재형성을 위해 서로 다른 물질을 필요로 할 수 있다.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네슬레 건강과학 연구소(Nestlé Institute of Health Sciences)의 위장관 건강 및 마이크로바이옴 그룹(Gastrointestinal Health and Microbiome group )을 이끌고 있는 스콧 J. 파킨슨(Scott J. Parkinson)은 하나의 분자 솔루션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킨슨은 변화시키려는 문제가 단일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생태계를 바꾸기 위해 애쓰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막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네슬레(Nestlé)가 수많은 제품군 가운데 하나의 라인에 불과한 분유제품을 수정해 아동이 거주하는 지리적 위치에 따라 다른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면 소비자에게 막대한 건강상의 이점을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제품의 대량 판매도 가능할 것이다.
파킨슨은 네슬레를 비롯한 여러 식품업체들이 상당한 자금을 투자해 마이크로바이옴이 장차 제품 개발과 관련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파악하려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파킨슨은 "어쩌면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에 대한 지식을 결합한 제품을 떠올릴 수도 있고 다양한 수준의 마이크로바이옴을 목표로 삼고 특정 환자 집단에 적용될 수 있는 생태계를 찾기 위해 애쓸 수도 있다"고 밝히며 "이를 확장해 다양한 소비자 또는 환자를 위한 맞춤형 제품으로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애거스와 마찬가지로 파킨슨은 과학자들이 마이크로바이옴의 비밀을 곧 풀 수 있으리라는 전망에는 회의적이다. 현재로서는 쓸만한 가설을 수립한 뒤 그 가설들을 시험해보는 기존의 과학적 방법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이 특정 약물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은 그 개인이 체내에 지니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단서를 드러내는 표식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옴과 관련된 경쟁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고 나날이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불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해답이 빨리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